투자자에게 거시적 환경은 받아들이는 외부적 변수이고 미시적 요소가 차이를 만들어낸다.
The macro is what we must accept; the micro is where we can and should make a difference. - by 리루(Li Lu)
2024년 12월, 세계적 명성의 가치투자자 리루(Li Lu)가 베이징대학교 경영대학에서 <혼돈스러운 현 시대 가운데에서의 글로벌 가치투자 Global Value Investing in Our Era>라는 제목의 강의를 했습니다. 가치투자는 기업에 대한 버텀업(Bottom-up) 방식의 펀더멘털 분석(Fundamental Analysis)을 통해 투자하지만 거시적인 외부 요인들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리루는 불확실한 거시 환경은 받아들이고 가치투자 원칙과 기업 펀더멘털 분석을 통해 자산의 구매력을 장기적으로 증대시키는 가치투자자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강의 내용이 너무 좋아 원문의 내용을 읽고 편집했습니다. 원문은 리루가 있는 히말라야 캐피탈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세번 번의 글을 통해 전하겠습니다.
리루는 1993년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워렌 버핏의 가치투자 수업을 듣고 자신의 인생이 바뀌었다고 합니다. 그와 유사한 수업을 베이징대학교에서 하게되어 기뻐합니다. 리루는 첫 수업으로 <중국에서의 가치투자 전망 The Prospects of Value Investing>이라는 제목으로 2015년에 강의했습니다. 두번째 수업으로 <가치투자 이론과 방법론 The Theory and Practice of Value Investing>이라는 제목으로 2019년에 강의했습니다. 그리고 세번째 수업으로 <혼돈스러운 현 시대 가운데서의 글로벌 가치투자 Global Value Investing in Our Era>라는 제목으로 최근에 강의했습니다. 해당 강의는 다음 세 가지 테마로 구성되었습니다.
- 현 시대 난관들의 원인
- 중간 소득의 함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현재 국제 관계에 대한 생각
- 글로벌 가치투자자는 혼돈스러운 현 시대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첫 번째 테마인 <현 시대 난관들의 원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현 시대에 주요 난관들
중국 내부적으로 젊은층의 실업난이 심각합니다. 실업률이 20%에 육박하고 있습니다. 전체 채용 인력의 90% 수준을 담당하는 기업인들이 정부로부터 재산권과 개인적 신변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높은 실업률은 소비 시장에 악영향을 주고 있으며 중국 자산의 70%를 차지했던 부동산의 가치가 추락하면서 소비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물가 수준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 관료들의 인센티브가 없어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 만연합니다.
외부적으로는 미국 질서가 붕괴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국제 무역의 평화와 안정, 해양의 자유, 글로벌 자본의 흐름을 보장하는 안정화 닻(stabilizing anchor) 역할을 하였습니다. 전 세계는 ‘미국 질서(American Order)’로 움직였습니다. 미국은 전 세계 군사비의 약 80%를 부담했으며 세계 경제의 최종 구매자이자, 통화 공급자이자, 최종 소비 시장으로 세계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미국인들이 세계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지급하는 자신들의 비용에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트럼프 정권의 등장은 이러한 움직임의 결과이며 관세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미국 질서는 균열이 나기 시작했으며 국제 무역의 자유와 같은 글로벌 공공재가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2. 난관의 원인과 본질- 문명 패러다임의 전환
인류 문명의 발전 단계는 1.0(수렵채집), 2.0(농경), 3.0(현대 과학기술)으로 구분됩니다. 중국은 현재 2.5단계 수준으로 과도기적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중국은 1980년대 개혁 개방 이후 최근까지 인플레이션을 반영한 실질 경제성장률이 45배가 넘습니다. 경제는 복리의 힘에 따라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 정치 시스템, 사회적 거버넌스는 변화 속도가 느려 이들간의 불일치가 사회적 혼란을 가져옵니다. 이러한 혼란을 슬기롭게 대처하면 3.0 현대 과학기술 문명으로 도약할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중진국 함정에 빠쳐 후퇴할 수도 있습니다.
2.0 농경 문명에서는 토지와 인구가 경제 규모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었습니다. 경제의 총 생산량은 토지와 인구에 의해 정해집니다. 그러나 농업 문명은 맬서스의 함정(Malthusian trap)이라고 불리는 성장의 한계에 봉착합니다. 인구의 증가가 토지의 부양 능력을 넘어서게 되는 성장의 한계입니다. 이로 인해 제국들은 더 많은 토지를 확보하기 위해 무력으로 영토를 확장합니다. 이로 인해 세계 역사에는 수 많은 영토 확장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3.0 과학기술 문명에서의 지속가능한 복리식 성장은 토지와 인구가 아닌 시장 규모(market size)와 생산 요소들의 완전한 순환(full circulation of productive factors)에 의해 주도됩니다.
3.0 현대 과학기술 문명에서는 영토 확장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토가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 아니기 때문에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인 미국은 과거 제국들과는 다른 결정을 하였습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정복한 모든 영토를 원래의 국가에 전부 반환했습니다. 대신에 국제 무역, 상품 교환, 자본 흐름을 포괄하는 글로벌 시스템에 전 세계 국가들을 편입시켰습니다. 이를 통해 국경이 없는 거대 시장에서의 경제 성장을 추구했습니다. 과학기술 문명에서는 시장의 규모, 그리고 기술, 노동, 자본과 같은 경제 요소의 자유로운 흐름이 성장에 중요한 동력이 됩니다.
그러나, 땅에 대한 집착은 여전히 인간 본성에 남아 있어서 2.5단계와 같은 과도기적 사회는 언제든 영토 확장에 대한 위험 요소를 내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류는 3.0 과학기술 문명 시대에서의 국제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새로운 국제 모델을 아직 정립하지 못했습니다.
3. 난관의 원인과 본질- 가상 경제와 현실 경제의 이분법
중국의 많은 정책은 ‘실물 경제(real economy)’와 ‘가상 경제(virtual economy)’를 구분하여 실물 경제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는 동시에 ‘가상 부문에서 실제 부문으로 자원을 재배치’ 하는 것을 목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자원이 농업에서 산업으로 이동하는 초기 산업화 단계에서는 유효합니다. 그러나 경제가 2.5단계 이상으로 넘어가면 이러한 구분이 쓸모없고 심지어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소프트웨어 시장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소프트웨어는 오늘날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반도체 기업인 엔비디아는 실물 경제로 간주됩니다. 그런데 1993년 창립 이래 엔비디아는 단 한 장의 반도체 직접회로도 생산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생산을 TSMC 등에 아웃소싱했습니다. 엔베디아는 본질적으로 반도체의 운영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소프트웨어 회사이기 때문에 가상 경제의 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AI 애플리케이션이 등장하기 전에 엔비디아의 상품은 주로 게임용이었습니다. 엔비디아는 게임, 클라우드 컴퓨팅, AI 산업에 필수적인 기업입니다. 독일은 강력한 실물 경제 기반을 유지하는 모델로 자주 언급됩니다. 하지만 오늘날 엔비다이의 시가총액은 독일에 상장된 모든 기업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 더 큽니다. 가상 경제와 실물 경제의 경계는 희미해 지고 있으며 구분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4. 정부의 역할과 시장의 중요성
계획 경제에서 시장 경제로 전환해 나가는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조정되어야 합니다. 2.0 농경 문명, 그리고 3.0 현대과학 문명으로 전환하는 초기에는 정부 주도의 계획 경제가 주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2.5단계를 넘어서 3.0 문명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시장 경제로 전환해야 합니다. 성장의 원천은 소비자의 수요이고 소비자의 수요 원천을 가장 잘 파악하는 주체는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기업입니다. 기업들이 복리식 경제 성장을 주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시장을 주도하기 보다는 자유로운 시장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도록 보조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명령하고 관리하는 정부에서 협력하고, 자문하고, 지원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로 전환해야 합니다. 또한, 자본시장의 발전하고 신뢰 기반의 금융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처럼 2.0 문명을 넘어 2.5 단계에 들어서게되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는 복리식 경제와 더디게 발전하는 사회적 거버넌스, 인간 본성, 정부 시스템 간의 불일치가 발생합니다. 여기에서 중간 소득의 함정이 발생합니다. 이를 현명하게 대처한 국가는 3.0 선진 문명으로 도약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국가는 아르헨티나, 브라질과 같은 국가처럼 쇠퇴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1번 테마 <현 시대에 주요 난관들의 원인과 본질 >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중간 소득의 함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리고 현재 국제 관계에 대한 생각>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참고자료
Speech at the 10th Anniversary Celebration of the Value Investing Course, Guanghua School of Management, Peking University, December 7, 2024
https://cdn.prod.website-files.com/5ef3c7300432b40ed865991a/67a4f75703627bd3a927077e_Global%20Value%20Investing%20in%20Our%20Era%20(2024-12-07).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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